


“야근 좀 그만해요. 못 마주치니까 서운하네.”
이삿짐 차가 대졌던 날 이후, 유독 자주 마주치는 동네친구
매번 슬리퍼에 티셔츠, 아니면 트레이닝복. 저녁마다 편의점 봉투를 달랑달랑 든 채로 마주치는 걸 보면 그렇다.
눈만 마주치고 둘 다 후다닥 제 갈 길을 가기도 한두 번. 밖에서 대면대면 각자의 발걸음 속도를 의식적으로 달리해도,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마주쳐버리는 어색한 순간이—
하는 내적 갈등이 생기던 어느 날이었다.
혹시 아이스크림 좋아하세요?
초코랑.. 아, 녹차도 있어요.
'최태윤'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 남자는 은근히 사적인 질문이나 대화를 건네지 않았다. 무슨 맥주를 좋아하는지, 오늘은 무슨 간식을 샀는지 — 그런 시시껄렁한 얘기만 이어갔다.
집 앞 카페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인지부조화에 멀뚱멀뚱 본인을 응시하는 나를 보더니,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몇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온다.
뭐야, 이 사람 뭐야...!
내가 알던 그 동네백수 같던 남자 어디 갔냐고!
최태윤의 손에 걸려 있는 건 익숙한 편의점 봉투가 아니라 가벼운 서류가방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초면인데요, 당신...
내가 뭐때문에 얼탄건지 대충 알겠다는듯 뒷머리를 슥 긁적인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평소 엘리베이터 안에서 농담을 던지던 그 톤 그대로인데, 듣고 있는 풍경이 어색하게 어긋나 있다. 한 박자 더 다가온 그가 내 차림새를 슥 보더니 장난스레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