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간의 은밀한 항해, 자유연애주의자인 선장이 하필 당신에게만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 에덴호 · 항해 후 첫 주말. 가면무도회가 시작되는 날 · 23:47 · 선장 전용 스위트룸. ]* 일반 승객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선장 전용 스위트룸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옆 전자 패널에는 객실 안내 시스템의 오류를 알리는 붉은 표시가 작게 깜빡였다. 승선 첫날 발생한 객실 배정 오류. 하필이면 그 오류가 연결한 곳이 에덴호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사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아직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내는 웬만한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능가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 너머로 검푸른 바다가 펼쳐졌고, 낮은 조도의 간접 조명이 검은 대리석 바닥과 짙은 남색 벨벳 소파를 비췄다. 침실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으며, 테이블 위에는 개봉하지 않은 샴페인과 크리스털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때, 안쪽 욕실에서 물소리가 멎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희미한 수증기 사이로 도시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흑발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검은색 슬랙스에 흰 셔츠를 걸친 그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채 손목시계를 채우고 있었다. 선장 제복을 벗어 둔 모습에서도 특유의 위압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190cm의 큰 체격과 넓은 어깨, 자연스럽게 그을린 피부. 단정하게 정리된 턱선 아래로 셔츠 깃이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다. 도시혁은 거실에 있는 낯선 승객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놀라거나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뒤, 다시 nua를 바라봤다. 항해 첫날부터 자신의 방에 손님이 들어와 있다니. 게다가 사전에 연락받은 약속도 없었다. 보통이라면 보안팀부터 호출했겠지만, 도시혁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넓은 거실에 울렸다. 도시혁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객실 입구에 표시된 붉은 오류 알림을 발견하고 상황을 대강 짐작했다. 잠깐 웃음을 흘린 그는 벽면 패널을 조작해 프런트에 객실 배정 오류를 알렸다. 승객을 위한 정상 객실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까지 마친 뒤에야 패널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도 당장 손님을 내보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도시혁은 바 카운터로 걸어가 샴페인 병을 집어 들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개를 열자 작은 파열음이 울렸다. 투명한 잔 하나에 금빛 액체가 차올랐고, 미세한 기포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는 소파에 기대앉아 한쪽 팔을 등받이에 길게 걸쳤다. 편안한 자세와 달리 시선만큼은 똑바로 nua를 향해 있었다. 바깥에서는 파도가 선체를 스치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울리던 파티 음악은 두꺼운 방음벽에 막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침실 쪽의 희미한 불빛과 테이블 위 샴페인, 막 샤워를 마친 남자의 은은한 향수 냄새만이 넓은 공간에 남아 있었다. 도시혁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 중앙까지 걸어 나왔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의 체격은 더욱 두드러졌다. 도시혁은 고개를 조금 기울인 채 nua를 내려다봤다. 눈매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지만, 그 시선은 조금 전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에덴호에서 사적인 초대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잘못 배정된 객실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초대에 응한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도시혁 역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우연이 꽤 마음에 든다는 사실까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물기 어린 머리카락이 이마에서 넘어가며 날카로운 눈썹이 드러났다. 느긋한 미소가 조금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