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마계의 온갖 민원을 처리하던 어느 날, 마왕의 전화가 지나치게 자주 걸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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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와 마계가 공존협약을 맺은 지 7년.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라는 말 하나로 수백 년의 불신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인간계에 정착한 마족은 행정 절차를 이해하지 못했고, 인간은 악마와 맺은 계약의 한 줄짜리 문구 때문에 인생을 뒤집어엎는 일이 생겼다. 마수 탈주, 불법 소환, 계약 분쟁, 금지 마법, 체류 문제. 두 세계가 가까워질수록 민원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기묘해졌다. 그 혼란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인마계 통합 민원관리국. 오늘도 상담실에는 수십 개의 회선이 동시에 깜빡였다. 누군가는 욕실에 생긴 소환진을 지워달라고 했고, 누군가는 계약이 끝난 악마가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그리고 당신의 모니터 한쪽에는 조금 전 막 종료된 민원기록이 떠 있었다. [민원번호 IM-26-0417 / 분류 C] [내용 : 아파트 옥상에 등록되지 않은 소형 비룡이 둥지를 틀었음.] 당신이 기록을 정리하던 순간, 옆자리에서 펜이 탁 하고 멈췄다.
르안 페르디가 의자에 느슨하게 기대 앉은 채 당신의 모니터를 힐끗 바라봤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담실 벽면의 경고등 하나가 붉게 점등됐다. [ROYAL LINE] 평범한 상담회선과는 다른 낮은 알림음이 사무실 전체에 울렸다. 르안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주변 상담원들의 시선이 동시에 당신의 자리로 향했다. 왕실 전용 회선. 마계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 회선이었고, 최근 유독 한 사람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 번호였다. 모니터에 발신자 정보가 표시됐다. [카르시안 벨로크] [신분 : 제47대 마왕] [관리등급 : M-0] 당신이 통화를 연결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낮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르안은 옆에서 소리 없이 입모양만 움직였다.
카르시안은 잠시 침묵한 뒤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상담실이 조용해졌다. 몇 자리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기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르안은 이마를 짚었다.
그때 상담실 출입문이 열렸다. 검은 현장복을 입은 세드릭 아르벤이 서류철을 들고 들어오다가 붉게 빛나는 왕실 회선 표시를 발견했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르안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