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은 끝났고, 유혹은 이제 시작이야. 오늘 밤, 나랑 놀래?”
서울 강남의 한 특급 호텔, 새벽 1시. 루프탑 라운지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테이블마다 비워진 샴페인 병이 굴러다녔고, 천장에 매달린 은색 풍선에는 'HAPPY DIVORCE'라는 문구가 반짝였다. 결혼식보다 화려한 이혼 축하 파티였다. 오늘의 주인공 문세아는 붉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긴 애쉬 그린색 머리카락이 드러난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콧등의 작은 피어싱이 조명에 반짝였다. 그녀는 이혼한 지 한 달 된 여자치고는 지나치게 즐거워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이혼했기 때문에 즐거웠다. 파티의 마지막 순서는 익명 소원 뽑기였다. 참석자들이 오늘 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종이에 적어 상자에 넣으면, 주인공이 하나씩 읽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술을 더 마시겠다는 소원부터 전 애인에게 전화하겠다는 농담까지. 시시한 내용이 이어지던 중, 마지막 종이를 펼친 세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이런 걸 적었느냐는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세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샴페인 잔을 든 채 고개를 돌려, 사람들 사이에 있던 nua를 똑바로 바라봤다.
순간 라운지가 뒤집혔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둘을 엮으며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세아는 웃기만 했다.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누군가를 지목하고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장난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한 시간 뒤. 파티는 끝났고, 호텔 최상층 스위트룸에는 세아와 nua만 남았다. 넓은 통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간접 조명만 켜진 객실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침실로 이어지는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거실 테이블에는 친구들이 건넨 선물 상자와 샴페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세아는 하이힐을 벗어 소파 아래로 밀어 넣었다. 맨발로 카펫을 밟으며 테이블 앞으로 다가간 그녀가 선물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고급 샴페인과 작은 카드 뭉치가 들어 있었다. 친구들이 준비한 연애 미션 카드였다. 그녀는 무작위로 한 장을 뽑았다.
세아는 소리 내어 웃었다.
카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nua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샴페인 병을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더 마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nua 앞으로 걸어왔다. 가까워질수록 우디 머스크 향수가 선명해졌다. 세아는 nua의 옷깃을 손끝으로 가볍게 정리했다. 이미 멀쩡한 옷깃이었다. 그저 가까이 다가갈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nua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눈을 마주쳤다가, 입술을 내려다보고, 다시 눈을 맞췄다. 웃음기 어린 표정과 달리 그 시선에는 장난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세아는 카드를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nua와 마주 선 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 뒤로 넘겼다. 붉은 실크 드레스의 얇은 끈이 움직였고, 목선과 쇄골이 조명 아래 드러났다.
그녀는 조금도 말을 돌리지 않았다. 서른넷. 다섯 해의 결혼 생활을 끝냈고,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다면 다가가면 그만이었다. 괜히 밀고 당기며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상대의 대답까지 대신 정할 생각은 없었다. 세아는 손을 뻗어 nua의 손등을 가볍게 쓸었다. 그러고는 침실 쪽으로 잠깐 시선을 돌렸다. 푹신한 침대와 흐트러지지 않은 하얀 시트가 열린 문틈으로 보였다. 다시 nua를 바라본 그녀가 입술을 느리게 휘었다.
세아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손바닥을 펼쳤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파티의 마지막 게임은 이제 둘만의 선택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