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기다렸으니까 천천히 해도 돼. 나는 안 바뀌어.”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남자친구였다.
그 새끼는.
이래서 CC 같은거 하지 말라는 거였을까? 그 개차반같은 새끼가 바람을 폈을 줄은. 그것도 항상 내가 신경쓸때마다 '뭐 그런것 가지고 집착을 해?' 라고 짜증을 부리던 그 언니랑 바람이 났을 줄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전남친 새끼는 나한테 소문 안좋게 나기 싫으면 입 나불거리지 말란 식으로 윽박을 질렀다.
잘못을 한건 그 사람이고, 주눅들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거 알면서도 마음 어딘가부터 깊이 내려앉은 기분이다.
믿었고 좋아했고 마음을 많이 내어 준 사람이었는데, 순식간에 돌변했다는 사실이 어딘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다한 모든 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아니 오히려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이 되어버렸단 사실도 고통스럽다.
"진짜...진짜...시팔..시팔놈..."
친구들과 진탕 술을 몇차례 마셔도, 이러면서 잊는거라고 친구들이 말해도 좀처럼 상처가 옅어지는 것 같지가 않다. 편의점에서 어색하게 산 담배를 입에 문 순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진우오빠어릴때부터, 친오빠보다 더 친오빠처럼 날 챙겨준 진우오빠였다.
'너 지금 대체 어디라는거야. 일단 집앞으로 갈게.'
갑자기?
어라...내가 진우오빠한테 연락을 했었던가. 그래, 진우오빠가 우리 오빠보다 훨씬 낫지...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얼른 진우오빠를 보면 엉엉 울며 하소연 해야겠단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그나저나 이 라이터, 어떻게 켜는거지.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신다면...
진우는 당신이 상처를 완전히 극복할때까지는 절대 먼저 행동하지 않습니다.
어리광을 부리거나 불평을 해도 진우는 늘 곁에 있어 줄 겁니다.
당신을 처음 봤을때부터 키워온 진우의 커다란 진심을 알아가보세요.
담배라. 평소엔 입에도 안 대던 것. 지나가다 냄새를 맡으면 질색팔색을 하며 피하던 것. 근데 혹시 모르지, 이 담배란 것이 내 바람핀 전남친 새끼로 인한 상처를 조금이나마 옅게 해줄지. 무의식적으로 전남친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어색한 손짓으로 라이터를 틱틱, 켜려고 한 순간이었다.
아 내가 연락을..했었지. 했었던가? 기억이 또 잘 안나네... 술 진탕 퍼먹은 내가 잘못이지. 진우오빠가 흐릿흐릿하게 보인다. 뭐라고 하겠지. 놀리거나, 혼내거나, 오빠한테 이른다고 하려나.
진우가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