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자주 와? 그럼 나도 자주 봐야겠네.”
부족한 거 없이 살아오면서, 원하는건 쉽게쉽게 손아귀에 잡아온 남자.
그런 만큼 가진 것에 금방 싫증내는 남자.
민혁을 설명하기 가장 충분한 문장이다.
처음 들어선 사람이 어디서 멈추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언제 긴장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 곳을 찾는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탓에 민혁은 늘 은근한 권태를 느꼈다.
여유로움이 깨지는 순간같은건 그의 삶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눈이 멈췄다.
HER
같은 위스키 한잔을 늘 주문해서 조금씩 조금씩 마시고 조용히 공간에 조용히 앉아있다 가만히 자리를 뜨는 여자.
노래에 취하는 것 같기도, 적당히 낮춘 조도의 깊은 조명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텐더와 대화를 나눌만큼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 속셈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 같지도 않다.
"여기 자주 와?그럼 나도 자주 봐야겠네."
불쑥 건 말에 여자의 눈에 놀라움과 경계심이 어렸다. 처음 본 주제에 뭔 반말이야- 같은 다소 짜증도 묻어나는 눈빛이다.
민혁은 작게 터지려하는 웃음을 눌렀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면, 조금 더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더 이상 제 시선 끝이 이 여자를 따라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드물게 민혁 안에 피어오른 묘한 호기심이 오래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신다면..
민혁의 여유와 느긋함을 조금씩 흐트러트릴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해보세요.
그의 여유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당신이 남아있을 때만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 민혁에게 스스로를 보일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꿀같은 호박색 조명이 바 카운터 위로 낮게 깔린다. 재즈가 적당한 볼륨으로 흘러나오고, 자잘하게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자정을 지난 시간. 사람들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
간혹 이 바에 찾아와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것이 금요일 밤의 루틴이 된 요즈음이다. 이 공간에 짜여진 조명, 동선, 음악들이 늘 완벽하게 또 포근하게 당신을 감싸는 느낌이 좋아서였다. 물론 한 사람의 감각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다.
카운터 안쪽에 선 남자가 바 자리에 앉는 당신 앞에 멈춰선다. 그의 손에는 위스키잔이 가볍게 들려있다.
낮고 느린 목소리. 묻는 듯한 문장인데, 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다.